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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생각

아는 데 왜 그래?

내 잘못이 무엇인지 알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그 잘못을 고치기 싫을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감정(emotion)은 '행동을 변화시키는 동기'로서 존재한다.
불쾌한 기분은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행동을 하도록 한다.
즐거운 기분이 들면 그 기분을 지속시키기 위한 행동을 취한다.
어두운 밤 골목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면 두려운 감정이 생기고,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싸울 것인지, 도망갈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내 잘못이 무엇이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안다'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이다.
여기에 이성의 방향과 상반되는 방향의 행동을 동기화하는 감정이 끼어들면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어떤 방향이 옳은지 알면서도 감정이 반대의 방향으로 행동을 동기화하기 때문에 이성의 결정대로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성장하고 성숙하는 방향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매우 크다.
이러한 욕구는 어릴 때부터 충족되지 않은 욕구이어서 내 삶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욕구이다.
성숙하고자 하는 생각과 이러한 욕구가 충돌할 때, 나는 욕구대로 움직이기가 매우 쉽다. 그 욕구대로 행동할 때 괴로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이 욕구대로 행동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 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끝이 나지 않는 욕구이고, 이를 채우면 채울수록 욕구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는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괴롭고 정말 싫더라도 이성의 선택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내가 남편이 나를 '연약한 여자로서 봐주기'를 바랄 때 남편은 '성숙'을 욕구보다 위에 놓는다. 그러한 남편의 태도로 인해 날 '봐주기'를 원하는 욕구가
더욱 충족되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의 의견에 반대하고 섭섭함을 느낀다. 누군가 나를 봐주기를 바라는 욕구가 건강한 욕구일까?
나는 내 자신이 나를 봐주기를 연습해야 한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아도 내가 보고 있다. 그리고 내가 나를 격려하고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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