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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생각

법과 원칙

용산 참사에 대해 보도한 PD수첩을 보았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MBC측이 왜곡 보도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용산 참사 후 '대통령과의 원탁 대화'를 보며 이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알 수 있었다.
MB가 이야기 하는 것은 법과 원칙. 이를 어긴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엄중히 대처하는 주체의 자율성을 충분히 확보시켜 주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자율성을 확보시켜 준다는 의미는 한마디로 열심히 일해서 실수한 공직자는 보호해 주고, 일 안하고 책임도 안지는 공직자를 벌해야 한다는 말이었음)
즉, 이번 용산 참사는 열심히 일한 경찰과 그 지시를 내린 김석수 경찰청장(정부에선 부정하고 있지만)이 저지른 실수이며, 이들을 처벌한다면 다음번 법과 원칙을 위반한 사태가 올 시 처벌이 두려워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통령의 주장이다.
 
하지만 MB의 주장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그가 주장하는 '법과 원칙'이 그것이다.
법과 원칙은 그 자체가 신봉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들은 다만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질서를 명문화해 놓은 문서일 뿐이다. 만약 법이 오히려 사람들을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한다면 그 법은 수정,폐기되어야 한다. 법과 원칙은 항상 그 존재의 이유(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가, 고통스럽게 하는가)를 통해서만 정당성이 입증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시각 없이 그저 '무슨 일이 있어도 법은 지켜져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일 때 법은 우리를 옥죄는 감옥이 될 수 있다. 나는 법을 위반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법은 지켜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법은, 그 법이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증진한다는 전제 하에, 지켜져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은 법이라면 사회 구성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새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누구를 위한 법과 원칙인가

Kholberg라는 심리학자가 '도덕성의 발달 과정'에 대해 연구한 바가 있다.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가 이야기한 도덕성 발달 3단계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이다. 이 발달 단계는 인간이 태어나서 성숙하면서 어떤 도덕성 발달 단계를 거치는 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첫번째 단계는 인습 이전 수준이다. 어린 아이는 엄마가 기뻐하는 일이 옳은 일인 줄 믿는다. 엄마가 때찌하면 해서는 안되는 나쁜일, 엄마가 아이고 이뻐라, 우리 애기 착하네 하는 일은 옳은 일이다. 다음 단계는 인습 수준이다. 인습은 사회적인 합의, 즉 법과 질서를 말한다. 이제 청소년이 된 아이는  엄마의 정서적 반응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사회적인 규칙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는 인습 이후 수준이다. 이 단계에서는 단지 법과 질서를 지키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법과 질서가 자유, 행복, 정의등의 기본권과 충돌 할 시에는 법과 질서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 정권은 이 이론에 따르면 두번째 단계에 속한다. 법치주의를 무지하게 강조하고 있지만, 그 법이 실제로 국민들의 자유와 행복을 증진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지 못한다. 철거민들이 왜 불법으로 시위를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존권이 그 어떤 법보다 우선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들이 불법으로 시위를 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2단계에 머물러 있는 그들에게 3단계까지 바라는건 무리일지 모르겠다. (참여 정부 시절 한나라당의 대정부 질문 동영상을 보고 국회의원들 수준에 충격 받았다. 나 초딩 때 학급회의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그렇다면 2단계는 어떠한가? 공권력은 법치주의를 앵무새처럼 읊조리면서 정작 본인들은 그 법을 지키고 있는건가?
용산 참사가 터지자마자 와서는 유가족들에게 생사 여부도 알려주지 않았고, 부검 동의서도 받지않은 채로 후다닥 자기들끼리 부검하고 사건을 종결시키려는 이런 작태!는 분명 합법이 아니다. PD수첩 보니 검찰측 인사가 한다는 말도 가관인데, 가족들에게 부검 동의서 안받냐고 묻는 인터뷰어에게 '그런 건 필요없습니다'라며 당당하게 말하더라. 게다가 용역 직원들과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철거민을 못살게 구는 행태도 합법이 아닐 것이다. 현 정부는 이처럼 미심쩍은 부분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지 않고, 거짓말만 계속 늘어놓고 있다. 

우연히 노대통령 시절 농민 두명이 시위로 죽었을 때 노대통령이 했던 대국민 사과 영상을 보게 되었다. 노대통령이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공권력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권력도 이처럼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데, 하물며 불법으로 그 권력을 휘두른다면 소위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권력 앞에 무릎 꿇을 수 밖에 없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는 MB정권이 바라는 것이 무릎 끓는 것이라고 여겨져서 화가 나고 슬프다. 이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았다는 사실이 화가 나고 슬프다. 아무도 국민을 대신해 막아줄 이가 없으니 이제 정말 국민이 나서서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ㅎㅎㅎ
정확한 도장의 의미는 이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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