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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생각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의 어려움

나에겐 내 작은키가 싫어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짧은 다리가 싫어서) 항상 7-8cm 높이의 하이힐만 고집하던 때가 있었다.
높은 힐을 신고 딱 붙는 청바지를 입고 나면 웬지 자신감도 샘솟고 목에도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 부작용 때문에 골반과 허리가 아프고 발목이 삐걱거려도 난 굳이 하이힐만을 고집했다.
하이힐만 신다보니 하이힐 신지 않은 자연스러운 나의 다리가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5cm만 컸어도 불편한 하이힐을 벗을 수 있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숏다리를 무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짜증도 내고 내가 이렇게 작은 건 키작은 아빠탓이라면서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주 꿋꿋이 7cm하이힐을 신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낮은 운동화를 신고 룰루랄라 다니는 날이 바로 내가 한단계 성숙할 날일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불편하고 몸에도 좋지 않은 하이힐만을 고집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난 내 자연스러운
모습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났다. 매일 체중을 체크하는 것도, 틈만나면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도....

난 내 모습이 싫다. 동그란 얼굴도 작은 키도 전부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게 내 모습인데 그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싫은 내 모습을 최대한 감추고 포장하려고 화장을 하고 머리 모양을 바꾸고 예쁜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
다행인지 아닌지 나이가 들수록(?!) 하이힐을 신고 싶어도 더 이상 신을 수 없는 몸 상태가 되자 이제 하이힐은 포기한 상태이다.
그렇지만 하이힐은 못신어서 포기한 것이지 안신는게 아니다. 결국 아직 난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이힐 대신 낮은 굽의 그럴싸한 신발을 신고 다닌다. (사실 이 곳 미국에서는 하이힐은 그리 대중적이지도 않다.)
 또 색조화장을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베이스 화장은 하고 다닌다. (사실 이 곳 미국에서는 여자들이 진한 화장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쁜 옷을 동경하고 있고 살 기회를 벼르고 있다. (사실 이 곳 미국에서는 노출 패션이 강세인데 난 몸매가 안된다는 핑계로 못입고 있다.)
이 세 명제를 종합하면, 난 여전히 사회적인 시선 - 미국적인 시선- 에 날 맞추려고 노력 중이다. 난 내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구린 인생일세.
항상 나에게 뭐가 잘못된 것이 없나 점검하는 습관. 내가 남과 달라서 미움받을만한 구석이 있는 건 아닐까 확인하는 습관.
이 습관, 정말 버리고 싶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래서 난 우리 남편이 참 존경스럽다. 그 사람은 스타일에 대해서는 '난 무조건 편한게 좋아'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옷은 대부분 티셔츠와 츄리닝 바지이다. 난 없어 보인다고 좀 괜찮게 입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남편은 별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남의 시선과 상관없이 당당하게 자신이 편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누가 뭐라고 하면 그냥 웃으면서 '전 이게 좋고 편해요' 한다.
난 누가 내 스타일에 딴지걸면 바로 방어 태세로 돌변, 얼굴 굳어지고... 다음번에 그 옷은 입기 꺼려지던데.
굳은 심지가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의 차이는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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