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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생각

이론과 실제,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하여


내가 아무리 자비심과 사랑에 대해 많이 알고 있더라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개념은 진정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나의 삶으로 증거되지 않는 지식을 어떻게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별개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렇듯 지식과 삶이 별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내가 그 지식이나 가르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해 보지 않으면 보고들은 무엇이든지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지 않은 지식이나 가르침은 나의 것이 되지 않았으므로 삶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지식은 삶에서 실천없이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지식, 곧 죽은 지식이 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자비심과 사랑을 단지 부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는다면
난 그 가르침을 표면적으로 보는 데에 그친다.
유명한 누구누구가 이러이러하게 살면 좋다더라, 그러니까 난 그렇게 살란다.
비판적, 분석적 태도 없이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이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난 그렇게 살란다’라는 것도 실제로 그렇게 살지못하고 말로만 그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자비심과 사랑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 개념을 나의 것으로 소화시켜야 그러한 삶이 가능하다. 

달라이 라마는 카르마에 대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도중, 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경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For us to live according to Shayamuni Buddha’s pronouncements on karma requires a degree of faith in his teaching. When he says that killing leads to a short life, stealing to poverty, there is really no way to prove him correct. However, such matters should not be taken on blind faith. We must first establish the validity of our objects of faith : the Buddha and his doctrine, the Dharma. We must subject his teaching to well-reasoned scrutiny. (An open heart, p.70)

그리고 그는 가르침의 유효성을 면밀하게 검증하는 것이 명상을 통해 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특히 분석적 명상이 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명상이란 어떤 대상과 친밀감을 키우는 것이다.
만약 자비심을 키우고 싶다면 명상을 통해 자비심이라는 마음과 가깝게 지낼 수 있다.

명상에는 분석적 명상과 정착적 명상 두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분석적 명상을 통해 대상을 이성으로 파악하고, 정착적 명상을 통해 생각을 버리고 그 대상에 집중한다. 이러한 두가지 명상 방법을 통해 특정 대상과 친밀해 질 수 있다.

1. analytic meditation
분석적 명상이란 명상하는 대상을 이성을 통해 관찰하는 것이다. 차를 살 때 좋은 점과 나쁜점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과 같다. 만약 내가 자비심을 키우고 싶다면 분석적 명상을 통해 자비심의 특성이나 구성 요소 등을 살펴본다.

2. settled meditation
일단 분석적 명상이 된 후라면 이제 대상에 대한 생각이나 분석적 태도를 버리고 대상에 집중한다. 이러한 명상을 함으로써 그 대상과 점점 더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러한 글쓰기도 달라이 라마가 말한 분석적 명상의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글쓰기를 통해 자비심과 사랑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깊이 깨달은 것을 잊지 말고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친밀한 관계를 지속한다는 말은 곧 그 깨달음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론과 실제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잊지 말고 간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진정한 깨달음이 곧 행동으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삶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다는 데에 이의를 달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진정 올바른 행동은 생각없이 나올 수 없으므로 내가 먼저 해야할 일은 깊이 생각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