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 요즘 나의 완소 레시피 책이다. 군더더기 없는 설명과 더불어 니어링 부부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샐러드와 빵, 수프 레시피가 들어 있는데 설명만 봐도 아주 간소하고 날 것 그대로의 맛이 그대로 전해진다. 화려하고 기교가 넘치는 음식이나 입맛을 자극하는 짜고 달고 매운 음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니어링 부부의 삶이 밥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몇 구절을 인용해보면,
---p.32
실력있는 요리사라면, 종종 음식의 결점을 감추는 데 사용되는 모든 향신료와 양념의 과도한 사용을 피할 수 있어야한다. 향신료나 양념으로 변장을 해야한다면, 이미 형편없는 음식이고, 이런 음식은 먹지 말아야한다.
--- p. 199
세상에는 요리책이 너무 많고, 요리사도 너무 많고, 요리도 너무 많다. 음식에 대해 다른 요리책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와 경향을 기반으로 쓰지 않는다면, 여기서 당장 그만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독특한 책을 쓰려 하고 그런 소망을 품고 있다. 내가 제안하고 기술할 식이요법은 영양가 있고 무해하고 간소한 음식이 될 것이다. 복잡하고 세련된 사람들을 위한 복잡한 음식이 아닌, 소박한 음식 말이다. 음식을 준비하고 만드는 데 있어 경제적이고 간단한 것이 나의 목표이다. 만일 가로 세로 9*15 센티미터 카드에 다 적지 못할 조리법이라면 잊어버리자. 내 책의 주제는 이렇다. 대충 말고 철저하게 살자. 부드럽게 말고 단단하게 먹자. 음식에서도 생활에서도 견고함을 추구하자.--- p.10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성이 지킬 자리가 반드시 부엌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성도 어디든 있고 싶은 곳에서 만족스럽게 일해야 한다. 요리하는 게 좋다면 그 일에 매달려서 굽고 지지고 튀기고 끓이면 된다.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 과정이 일이나 고역이 아니라 즐거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부류가 아니어서, 어떤 일 때문이든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타입이다. 당연히 음식준비로 법석을 부리며 시간을 보내기는 싫다......식사 준비가 고역인 사람이라면 그 지겨운 일을 그만두거나 노동량을 줄이자. 그러면서도 잘 먹을 수 있고 자기 일을 즐겁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동물을 인간의 노예로 만든다. 또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해서 동물의 노예가 된다. 목축업자, 우유 짜는 이, 양치기, 목동, 농부, 도살자 모두 가축의 시중을 드는 일에 관련된
노동을 한다. 키우고 돌보는 데 쓰는 시간과 노력을 더 나은 인간을 키우고 돌보는 데 쓰면 좋으련만.
우리 인간은 특권을
누리는 동물이다. 우리는 소의 저녁 식사감이 되지도 않고, 원숭이처럼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병원균을 주사 맞지도 않는다. 또
다람쥐처럼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쳇바퀴 속에 들어가 계속 달리는 훈련을 받지도 않는다. 우리에 갇혀서, 저녁식사때 예쁘게
노래하라고 성대 수술을 받는 일도 없으며, 신기한 인간 표본으로 뽑혀 동물원 우리 속에 갇히지도 않는다. 우리의 젖을 짜내서
송아지에게 먹이지도 않고, 우리 아기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 잘려서 누군가의 저녁식사 재료로 쓰이는 꼴을 당하지도 않는다.--- p.71
헬렌 니어링은 이 요리책을 쓰기 전에 200-300년 전에 쓰여진 요리책을 훑어보았다고 한다. 당시 요리책들을 군데군데 인용해 놓았는데 그것들을 읽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여러 인용구 중에 내가 제일 맘에 들었던 부분은 불의 세기를 가늠하는 방법이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가스불이 없어서 요리책에도 약한불, 중간불, 센불이라는 기준이 없다. 대신 불의 세기를 가늠하는 방법이 이런 식이다.
모든 여인의 요리책 Every lady's Cook Book. 1854
이 책을 이용해서 요즘 해 먹은 음식은 감자 샐러드와 기본 샐러드. 제철 과일과 유기농 채소로 만든 샐러드는 정말 맛이 좋다. 고추장 된장 간장에 길들여져서 조리거나 절이고 무치는 음식만 먹다가 샐러드를 먹으면 입맛이 아주 개운해진다.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으니(또는 아주 최소한으로) 영양소 파괴가 거의 없다. 게다가 화장실을 가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헬렌 니어링의 감자 샐러드의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감자(중간 크기) 6개
양파(곱게 다진 것) 1개
파슬리(다져서) 1/2컵
식용유 4큰술
식초 2큰술
천일염 약간
감자를 큰 냄비에 넣고 냉수를 넉넉히 붓는다. 꼬챙이가 들어갈 때까지 삶는다. 너무 푹 삶지 않는다. 감자를 삶은 물을 버리고, 껍질을 벗긴 다음, 따뜻할 때 썬다. 양파와 파슬리를 넣고 가만히 섰는다. 이때 감자가 부서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식용유, 식초, 천일염을 감자에 골고루 뿌린다. 4-6인분.
감자 샐러드 - 다진 양파의 재발견. 다진 양파의 향과 올리브유, 감자의 씹히는 질감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진다.
기본 샐러드 - 집에 있는 야채들을 썰어 넣고 올리브, 과일, 견과류, 치즈를 올린 후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적당히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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