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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길

타인을 위한 삶 1. WHY : 왜 타인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 아직까지 이 질문에 대해 확신에 찬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이타주의를 상호호혜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 설명은 마더 테레사의 헌신적인 사랑을 설명하지 못한다. 마더 테레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중에 무엇을 받기 위하여, 또는 천국을 가기 위하여 사랑을 베풀지는 않았으니까. 성서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계명을 주셨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그런데 왜 그런지는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 -_-;; 불교에서는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로 空을 말한다. 우주의 만물은 각기 존재하지 않고 연결되어 있으므로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일은 곧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정강길 선생님 말처럼 신의 장대한 계획 - 만인을 위한 세상.. 더보기
왜 God인가? 난 오랜 시간 성당에 다녔었고 지금도 교회 예배를 나가지만, 마음 한 켠의 찜찜한 구석을 숨길 수 없다. 그 찜찜함은 '왜 애초에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서 나온다. 전지 전능하고 선하신...이라는 신의 특성 또한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신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자신에게 간절한 소망이 있는데 그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도를 하는 대상으로서의 신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또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하나님을 그저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믿기에는 매우 부족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직접적인 체험은 어떠한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하나님 체험' 은? 하지만 나에겐 그러한 체험도 의문 투성이이다. 그것이 정말로 신적인 체험인지 아닌.. 더보기
미래에서 온 기독교를 읽고 (1) 정강길님의 '미래에서 온 기독교'를 읽고 나서 느낀점- 사건으로서의 예수 지금까지 연구되어 왔던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지혜자 예수, 농부 예수, 변혁가 예수 등 한가지 모습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역사적 예수는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 또한 나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렇게 한 가지 모습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적 예수를 불가지론으로 갈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모습을 가진 예수로 받아들이면 문제가 간단해 진다. 만약 예수가 특정한 한 개인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가 죽어간 수많은 무명의 죽음들, 그 사건들의 총체라고 한다면 말이다. 즉 예수는 사건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 사건이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하느님 나라 운동이다. 예수를 사건의 이름으로 본다면 예.. 더보기
진화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사역 (이 글은 오래전 1998년도에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인간현상」(한길사)을 읽고서 쓴 글이다. 현재 기독교 안에서 논의되는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정보 제공과 참조 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올린 글임을 밝혀둔다. -정강길) 1. 들어가며 98년 8월 12일자 를 보면 '과학과 종교의 절묘한 조우'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나온 적 있다.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바야흐로 회의(懷疑)에서 출발하는 과학과 믿음에서 출발하는 종교가, 하나의 지평에서 만나게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상대를 부인하는 적대관계였지만, 이제는 과학과 종교가 상호적으로 관계되면서 이전의 근대성에서 벗어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우리 가운데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과학자들은 종교인들과 더는 골치 아.. 더보기
<하나님 중심/계시/신비>를 빙자한 사유의 폭력 -바르트식의 신학적 사유 패턴과 러셀 패러독스 를 빙자한 사유의 폭력 바르트식의 신학적 사유 패턴과 러셀 패러독스 흔히 말하듯 보수 기독교인 두고 종종 “묻지마 신앙인”이라고도 말한다. 왜냐하면 그 어떤 교리적 전제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선 안되고 결국은 무조건 믿어야만 신앙이 성립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코 건들면 안되고 비판이 불허되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여전히 전통 교리가 깨어지면 기독교 자체가 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현실이다. 이때 이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신비와 계시를 매우 강조하면서 이에 대해서 더 이상 캐내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매우 하나님을 매우 높이고 있는 신실한 신앙인이 아닌가 라고 생각될 정도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을 하나님 중심으로 보겠다는 것이니까.. 더보기